안녕하세요~ 제가 서울에서 열리는 #이오이개인전
추천해드릴게요~!
1.전시명 :고스트 노트
2.전시기간 : 2024.08.07.(수) ~ 2024.08.25.(일)
3.참여작가:이오이
4.입장료 :무료
5.전시장소 :COSO 코소
6.대중교통 :안국역 2번출구
7.주소 :서울시 중구 창경궁로5길 32, 3F, 갤러리 코소
8.운영시간 :평일 13:00~19:00 (월,화 휴관)
9.주차:주차가능(발렛 파킹가능)
작가노트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탐구하는 일에 마음을 쏟아왔다.
하지만 생은 그게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동안에도 이어지는 것이다.
살아갈 준비가 덜 된 채로도, 취약하고 무력한 일상이나마 지속되는 건
때마다 내가 나를 유지할 만큼의 식사, 수면, 배출욕구를 따르기 때문이다.
생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강렬한 만큼 현상을 유지하려는 욕구가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무척 어색한 것이었다. 무엇도 부정하지 못하는 틈에 괴리가 자라나고,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어디서나 공포를 만났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두려웠다. 대체 이 일상이, 한편으로는 더 이상 일상이 아닌 이것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인지 낱낱이 알고 싶었다.
탄생과 동시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는 것 같은 생물들이 있다. 뇌의 발달이 단순한 생물일수록 그렇다. 예컨대 개미들은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맡은 바 역할을 해내며 집단을, 스스로를 유지한다.
굴을 짓는 법, 무너진 굴을 재건하는 법, 먹이를 찾는 법 등을 자연히 알거나 적어도 아는 듯 행동한다. 그들과 달리 내게는 그런 지식도, 본능도 없는 듯했다.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로서 사라짐이 자연스럽다면 죽음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다. 곁눈질로 파내려 간 굴은 어설프기만 했고, 결국 굴이 무너져 내리자 나는 굴을 포기하는 것 외에 더 나은 방법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앞서 발견한 간극을 들여다보는 것은 도리어 내게도 있는 생존본능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나 또한 하나의 생명체로서, 신체적 욕구는 물론 해석이 버거웠던 감정과 충동마저도 결국은 생존을 위한 것, 역설적이지만 나를 살리기 위한 기제였다는 데까지 사고가 미치자, 인정하든 않든 나 또한 한순간도 굴을 떠난 적 없었음을 인지한다. 내 본능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자극을 위협으로 여겨 매우 신중하게 안전한 것과 아닌 것을 분류했다. 그렇게 이룬 일상은 고립에 가깝기는 해도 나에게는 안정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삶이었다.
굴곡 사이사이로 어렴풋하지만 꺼졌던 기능들이 복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내 ’그린다’라는 뜻밖의 충동이 돌아온 날, 나는 그림을 그렸다. 전처럼 마음껏 그릴 만한 장소도 재료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행동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명에게 본능은, 욕구는 그런 것이었다. 그림도 마치 식욕처럼 때에 따라 원하지 않을 수도 있을 뿐, 영영 잃어버린 무엇이 아니었다는 발견이 그릴 수 없던 시간만큼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싶은 욕구는 곧 다시 떠났지만 어쩌다 보면 돌아왔고, 이후로도 나는 기본적인 생명 유지 외에도 생을 구축하는 여러 욕구들을 찾았다가 잃기를 반복했다.
그림이 하나 둘 쌓였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몰랐고, 곧 같은 물음을 이어갔다.
왜 그리는 걸까. 어떻게 그려야 하나.
더듬더듬 찾은 문장들을 늘어놓아 보았지만 어느 하나 적확하지가 않았다.
왜 [살아가야/그려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그려야] 하는가.
너무 근본적인 나머지 나를 초월해 버린 질문들은 자꾸만 흩어졌다.
다만 살아가는 나와 그림, 막연하
게 쌓아온 흔적들이 어찌나 필사적이고, 절박하고, 충실한지 살아있지 않은 듯 살던 순간조차 참 생명답게 존재했다는 증거가되어 눈앞에 들이닥친다. 그 앞에서 나는 생이 무엇인지 이해한 다음 준비가 되면 살아보겠다는 일말의 고고함을 잃는다.
아무 곳에 있는 것 같지만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아있는 돌, 흙먼지, 자라난 풀과 나무, 아무렇게나 생긴 얼룩과 그림을 겹쳐 본다. 방법을 몰라, 나의 여건 안에서 갈 수 있는 길은 죄 가본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갈 수 있는 곳에 가고, 혹여 그게 가만히 있기라고 하더라도 치열하게 존재하는 중인 것들.
원래부터 온 과정을 지나 이런 모습을 할 예정이었던 것처럼 순간 정지하는 것들.
거기에서 나의 열심과 나태를, 살아있는 나를 느낀다.
나는 어디로 향할지 아는 듯 모르는 듯 선택들을 내린다.
그릴수 있는 날에, 그릴 수 없는 날이 더해지더라도 그 조차 어떤 화면을 이룬다면,
생이 이어지는 동안에 그 모습을 확인해 보고싶은 마음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